이제 독서는 단순한 배움이 아니라 감각이자 취향이다. 읽는 행위보다 문장을 즐기고, 글을 멋으로 소비한다. 글을 읽는 힙함 '텍스트 힙(Text Hip)' 그리고 쓰는 행위마저 스타일이 되는 '라이팅 힙(Writing Hip)'까지. 요즘 세대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읽는 문화'에 대하여.
요즘 힙한 건, 활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을 건드리는 한 문장, 스친 인용구 한 줄로도 충분하다. SNS에서는 짧은 글귀가 밈처럼 퍼지고, 좋은 문장은 댓글과 공유를 통해 감정의 언어로 번져간다. 이들은 책의 내용보다 감정이 통하는 한 문장에 집중한다. 텍스트 자체를 '콘텐츠'로 소비하는 문화. 독서는 더 이상 조용한 취미가 아니라, 텍스트를 가장 힙한 언어로 사용하여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되었다.
'읽는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SNS에서는 '한 문장 챌린지', '북 밈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이미지로 만들어 공유하고, 댓글로 공감한다. 짧은 텍스트는 밈처럼 퍼지고, 문장은 곧 감정 공유의 매개체가 된다. 인스타그램에는 문장만 큐레이션하는 계정이 늘고, 마켓과 연계해 '문장 굿즈', '책 인용 머그컵', '활자 키링'을 내놓는다. 문학 인플루언서가 팔로어들과 '대학교 시배틀'을 열고, 기업 지원을 받아 콜래버레이션으로 문학 공모전도 개최한다. 글을 읽는 일이 감성 콘텐츠로, 그리고 트렌드 마케팅의 소재로 확장되는 것이다.

형태도 공간도 달라진 '읽는 낭만'
이제 책은 무겁지 않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다산책방의 경장편 소설선 ‘다소(多少) 시리즈’, 휴대전화 보다 작은 난다 출판사의 휴대용 시집 ‘더 쏙 시리즈’, 고전을 현대적인 감각의 표지로 재탄생시킨 문학동네의 ‘먼슬리 클래식’ 시리즈처럼 짧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출퇴근길이나 카페에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디자인은 감성 굿즈처럼 세련돼 ‘소장욕’을 자극한다. 민음사의 젖지 않는 책 ‘워터프루프북’은 매해 여름마다 읽기 좋은 글을 큐레이션한 에디션으로 한정 판매한다.


북카페와 독립서점은 책 파는 곳을 넘어 ‘읽는 분위기’를 소비하는 감성 공간으로 진화했다. 책과 커피, 향, 조명을 결합해 활자를 경험하는 공간을 만들고, 북토크·필사 모임 같은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읽는 행위를 취향으로’ 확장한다. 도심과 자연을 벗삼은 야외 도서관은 물론, 오프라인 독서 파티까지. 사람들은 책 한 권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이 있는 분위기 속에서 머물기 위해 찾는다.

읽는 감동을 손끝으로 다시 새기다
‘라이팅 힙(Writing Hip)’은 읽기에서 쓰기로 확장된 트렌드다. 좋은 문장을 저장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손으로 옮기며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한다. SNS에는 ‘하루 한 문장 필사’, ‘한 줄 에세이 쓰기’, ‘감정일기 챌린지’ 등 #라이팅챌린지 해시태그가 꾸준히 올라온다. 디지털 펜으로 노트에 필사하거나, 한 문장을 손글씨로 써서 사진으로 공유하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프리미엄 필기구와 노트 브랜드부터 개성 있는 디자인 문구 브랜드 이에 맞춰 필사 노트, 워크북, 라이팅 키트를 선보이며 ‘쓰는 감성’을 제품으로 제안한다.


누군가는 한 줄의 문장을 저장하고, 누군가는 그 문장을 손으로 써 내려간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독서템으로 그 시간을 완성한다. 읽는 일과 쓰는 일, 감성과 취향이 한데 어우러지며 ‘힙’의 기준은 더 이상 패션이나 음악이 아니라 활자가 되었다. 올가을, 내 마음에 밑줄을 그을 한 문장, 그 문장을 써 내려갈 순간. 이것이 지금 가장 힙한 독서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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